[세계문화사 '콕 찌르기'] (26) 임진왜란

입력 2016-07-01 16:25  

장원재 박사의'그것이 알고 싶지?'

"일본이 침략할테니 조선은 대비하라"
'일본 핵심' 유키나가 미리 알려줬지만…



임진왜란(壬辰倭亂·1592~1598)은 당대의 동북아 정세를 바꾼 국제전입니다. 우리는 ‘일본이 조선을 일방적으로 기습했고, 명나라 지원군의 도움을 받아 조선이 일본을 한반도에서 몰아냈다. 이순신, 권율 등의 분전과 각 지역에서 거병(擧兵)한 의병들의 활약이 대단했다’고 배웁니다. 한반도에 상륙한 뒤 일본군이 한양에 입성하는 데 20일이 걸렸습니다. 부산에서 서울에 이르기까지 거의 아무런 군사적 충돌 없이 일방적으로 진격했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일본 기습설’을 논하는 근거 가운데 하나입니다. 기습이 아니라면 군사적 대비가 있었을 테고 조선군이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죠. 역사적 진실은 ‘조선의 대비가 놀랄 만큼 미흡했다’는 것입니다.

‘일본이 침략한다, 안 한다’ 갈팡질팡

1590년 통신사로 일본에 파견된 정사(正使) 황윤길이 도요토미 히데요시(德川家康)를 만나고 돌아와 ‘일본이 반드시 침략할 것’이라고 보고한 사실, 서인인 황윤길에 맞서 동인인 부사(副使) 김성일이 ‘일본은 침략하지 않는다’고 상반된 보고를 올린 사실은 유명한 얘기입니다. 의견이 갈리면 최악의 경우를 상정해서 대비하는 것이 제대로 된 나라의 대응법입니다. 조선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을 외면한 것입니다. 일본의 침략을 오래전에 예측하고 율곡 이이가 주창했다는 ‘10만 양병설’도 역사적 근거가 튼실하지 않은 신화(神話)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율곡이 이런 주장을 했다는 기록이 없고 후대인의 문집에 ‘율곡이 이러이러한 얘기를 했다는 말을 스승으로부터 전해 들었다’는 구절이 있을 따름입니다. 집권의 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해 서인(西人) 진영에서 지어낸 일화일 수도 있다고 말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유키나가는 일본 1군사령관

그런데 일본이 조선을 침략할 것이라고 줄기차게 알려준 일본인이 있다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는지요? 그것도 일본 조정의 주요 인물이 그랬다면? 사실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 선봉장으로 1군 사령관을 맡았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2군 선봉장은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입니다). 고니시는 일본 규슈 지방의 영주였는데 줄곧 조선과의 전쟁을 반대했습니다. 일본의 내전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또 군사행동을 일으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서 그는 실익이 없는 해외 파병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여담입니다만 나중에 조선으로 출병하는 고니시의 1군에는 가톨릭 신자인 병사들을 위해 포르투갈 신부가 승선하고 있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그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의 사위가 대마도 도주(島主)였다는 점도 연구 대상입니다. 현재 ‘대한민국과 가장 가까운 외국 땅’인 대마도(부산에서 쾌속선으로 두 시간 남짓밖에 걸리지 않습니다)는 당시에도 한국과 일본의 중간 지대였습니다. 일본령이기는 하지만 조선과 통상을 하지 않으면 먹고살 길이 막연했습니다.

산지(山地)가 많아 식량과 생활 물자를 자체 조달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고니시는 사위와 힘을 합쳐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백방으로 노력했습니다. 조선이 일본에 통신사를 보내는 데 역할을 했고, ‘조선이 통신사를 보냈으니 외교적으로 문제를 풀자’며 도요토미를 설득했습니다. 전쟁이 필요없다는 주장을 하고, 조선통신사가 올 테니 일단 기다리자는 말을 한 것입니다. 심지어는 조선이 일본에 보내는 국서와 일본이 조선에 보내는 국서를 위조하기도 했습니다. 조선에 사신을 보내(사실은 대마도주가 보낸 것이지만 일본 조정의 위임을 받은 것처럼 행세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새로 취임했으니 사신을 보내달라, 서로 친선을 도=모하자’고 요청했습니다. ‘양 조정이 듣고 싶어하는 말’로 중간에서 국서의 내용을 조정한 것입니다. ‘국서 위조’는 만약 발각되면 목숨을 내놔야 하는 중대 범죄였습니다. 고니시는 조선의 사신이 일본에 자주 왕래하면 전쟁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군사적 대비를 하지 않은 조선

조선 조정이 김성일의 보고를 채택했다는 말을 듣고 고니시는 사위를 통해 조선에 대한 설득의 수위를 높입니다. ‘일본의 조선 침략 준비는 일반인도 흔히 입에 올릴 만큼 비밀도 아니다. 전쟁을 막으려면 조선이 움직여야 한다. 사신을 계속 보내거나 국서를 보내거나 왕족이 방일해달라’고 얘기하지만 조선 조정은 ‘한 번 통신사를 보낸 것으로 족하다’고 회신합니다. 고니시는 아예 일본군의 규모, 정벌 기지의 위치, 병력 숫자를 조선에 알리고 심지어는 출병 예정일이 언제인지도 조선에 미리 말해줍니다. 전쟁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자는 그의 말을 조선에서는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습니다. 일본은 당시 류큐 왕국(오키나와), 서양 여러 나라 및 중국과 교류하며 전쟁 물자를 조달했습니다. 중국도 일본이 언제 조선에 쳐들어올지를 사전에 알고 있었습니다.

조선 조정을 제외한 동아시아의 많은 사람이 모두 다 인지하고 있던 사실입니다. 조선이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해 명나라가 조선을 의심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조선이 일본과 내통하고 일본군의 명나라 진군로를 내주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다면 저토록 무방비로 일관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조선은 외교적 노력도, 군사적 대비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허무하게 당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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